어린 아이의 그림과도 같은 순수함과 단순함.
그림 엽서에서 많이 보았음직한 그림으로 가득한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화가 장욱진 선생님의 작고 20주년을 맞이해서 마련된 대규모 회고전.
초기 작품부터 돌아가시기 직전의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어서 더욱 의미 있었습니다.
어린 아이, 가족, 나무, 새 등 일상적인 소재로
소박하고 정감있는 그림을 그린 장욱진.
거의 대부분의 작품 크기가 10호 미만.
보통 엽서 크기를 1호라고 하니까 그림 엽서 10개 모인 것이 안 되는 크기라는 건데요.
웅크리고 앉아서 작업하곤 하셨다는 장욱진 선생님은
손바닥 안에 들어올 수 있는 크기의 캔버스에
빨려들듯이 몰입하며 작업하길 즐기셨다고 합니다.
유학시절 다다미 방에서부터의 작업습관이라고 하는데
자신의 내면 세계로 침잠하는 화가 장욱진의 기질적인 측면도 작용했을 거라고 하네요.
자, 그럼 사간동 갤러리현대 1층, 2층 그리고 지하 1층에서 보고 들었던
화가 장욱진의 그림 이야기를 전해드릴게요.
1. 1940년대 초기 작품
일본 유학 이후부터 덕소로 작업공간을 옮기기 전까지
<마을>_1947
전시작 중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입니다.
장욱진 선생님이 사시던 시골의 풍경을 담은 그림으로
향토성과 소박미, 고향에 대한 향수가 뭍어납니다.
색채가 어두운 40년대 작품들을 지나
1950년대부터는 밝고 경쾌한 그림들이 등장합니다.
<자화상>_1951
한국 미술 근현대사에서 장욱진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작품.
한국 근현대 회화부문에서는 아주 드물게 문화재로 지정된 작품.
장욱진 선생님의 대표작인 <자화상>은 전쟁 중에 그려진 그림입니다.
한국 전쟁 중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가
자신의 고향인 충남 연기군에 잠시 기거할 때 그린 것으로
종이 위에 그려진 작품입니다.
장욱진의 작품에서 콧수염을 달고 있는 인물은 모두 작가 자신인데요.
이 작품은 한국의 전형적인 가을 풍경에 전쟁의 느낌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데,
전쟁의 아픔과 혼란을 잊고자 하는 갈망에서 그려진 아이러니가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가족>_1953
어린 아이가 그린 듯한 그림. 가족을 모티브로 한 그림입니다.
가축(소, 개, 닭), 새(까치, 제비), 집과 어린 아이.
장욱진의 주된 작품 소재가 모두 들어가 있는데요.
장욱진 선생님의 작품 주제는 평생 변함이 없었다고 합니다.
<모기장>_1956
어린 아이가 모기장을 쓰고 누워있는 모습입니다.
어린 아이의 모습은 위에서 내려다 본 시점으로 그려졌고
요강, 등잔, 그릇 등은 앞이나 옆에서 본 시점으로 그려졌는데요.
하나의 그림 안에 입체적이고 다양한 시점을 반영하면서
초기 추상의 단계를 조금씩 밟아나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로수>_1957
지구를 연상시키는 둥근 가지의 나무와 집이 그려져있는데요.
이 그림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은 두껍게 칠해진 집 부분입니다.
이 작품에서 눈여겨 볼 것은 안료 시술의 변화입니다.
안료시술은 1973년을 기점으로 변화가 보여지는데요.
1973년 이전 작품은 유화물감을 여러번 덧발라서 아주 두껍게 표현하는
마띠에르 기법이 강하게 보이지만
1973년 이후에는 캔버스의 직조가 훤히 들여다보일 만큼
수묵화나 수채화와 같은 느낌으로 표현이 가능해집니다.
전시장 2층에는
장욱진 선생님이 작업공간을 옮긴 지역명에 따라 그림이 전시되었습니다.
시기별로 작품의 경향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2. 덕소시기(12년)
작품의 정체성을 집중적으로 탐구하던 시기,
순수 추상의 실험들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던 시기입니다.
<두사람>_1972
인물의 표현에서 달라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네요.
간결하고 단순하게 인물을 기학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가장 단순하게 사람을 그려보라고 했을 때, 새를 그려보라고 했을 때
나라면 어떻게 축약했을까를 생각해보니
단순한 그림이 단순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작가의 관찰력과 치밀한 사고가 숨겨진 단순함의 미학.
거장의 면모가 그 곳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부엌>_1973
간단하게 표현된 부엌의 모습입니다.
작품명은 부엌이지만 역시 집과 가족의 이미지를 그렸습니다.
고구려 고분벽화 중 부엌도라는 작품이 있는데 거기서 영감을 얻어 그린 작품으로
안료시설의 변화로 마티에르 기법이 점점 사라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3. 명륜동시기(5년)
도교, 불교 등 종교의 영향을 받은 시기로
수묵화적이고 전통 회화적인 요소가 등장합니다.
정자, 낚시하고 있는 노인 등 무위자연 사상의 관념적인 표현과
사찰 등 불교적인 요소도 엿볼 수 있습니다.
<가로수>_1978
명륜동 시기의 모든 내용이 총체적으로 나타난 대표적인 작품으로
실제에서는 불가능한, 나무 위의 집과 정자를 표현했는데
이는 도교의 안빈낙도 사상을 반영한 것이라고 하네요.
이때까지만해도 나무들이 꼿꼿하게 서있는 점 기억하세요.
4. 수안보시기(5년)
수묵화적인 요소가 최고조에 달한 시기입니다.
<나무와 산>_1983
수안보시기를 대표하는 작품.
나무의 표현에서 서예의 필력이 느껴집니다.
유화를 배우기 위해 일본 유학도 다녀왔지만
유화에만 머무르지 않고 수묵화적 경향의 유화작업, 분청사기에 그린 도화 등
자신의 작품의 정체성을 발전시키기 위해 끊임 없이 노력했던 모습을 느낄 수 있습니다.
5. 용인시기(5년)
지금까지의 모든 작품 동향이 종합적, 총체적으로 나타난 시기입니다.
<가족>_1988년
후기의 특징인 많이 휘어진 나무와 비틀비틀 흔들리는 인물로 동적인 요소가 가미되었습니다.
작품의 주제에는 변화가 없지만
생동적이고 즉흥적인 요소를 주기 위한 변화 장치라고 하네요.
1951년의 자화상에서는 날씬했던 모습이
노년기에는 배도 나오고 뒷짐도 지시고...세월에 따라 달라지시는 모습이네요.
실제로는 할아버지 때도 많이 마르셨던 것 같은데 말이죠.
장욱진 선생님의 그림에는 가족이 기본 주제인데요.
이는 본인의 가정에 대한 애정으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합니다.
특히 부인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크셨다고 하는데요.
30년간 서점을 운영하면서 생계를 책임지며 내조한 부인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컸던 것을
가족에 대한 모티브를 통해 표현한 것 같다고 합니다.
또 하나, 장욱진 선생님의 그림에 어린 아이는 한 명 아니면 두 명만 표현되는데
실제로는 2남 4녀의 6남매였다고 합니다.
작품에서는 상징적으로 한 두명만 표현해서
서로 자기를 그렸을 거라고 자녀들끼리 논쟁하는 일이 잦았다고 하네요. ^^
<밤과 노인>_1990
돌아가시기 사흘 전에 남긴 마지막 작품입니다.
텅빈 집, 마을을 등지고 하늘을 향해 가고 있는 듯한 흰 옷 입은 노인.
실제 장욱진 선생님께서는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도 가족들과 식사할 정도로 건강하셨는데
27일 갑자기 돌아가셔서 가족들이 많이 당황하셨다고 하네요.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림을 통해 죽음을 예감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으셨나 생각됩니다.
지하 1층 전시장에는 먹그림과 장욱진 선생님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강운구 사진작가님이 순수한 웃음을 지닌 장욱진 선생님의 생전 모습을 잘 담아내셨더군요.
수안보 시기 때의 수묵화적인 유화그림과 구분하기 위해 먹그림이라고 명명된
장욱진 선생님의 먹그림도 볼 수 있었습니다.
전시장 한 켠에 재현되어 있는 화가의 아틀리에와
장욱진 선생님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전시장을 나오면서
마음 한 켠이 소박해지고 경건해짐을 느꼈습니다.
작고 단순한 그림.
그러나 그 그림 뒤로 숨겨져 있는 치열한 사고와 고민.
고도의 압축을 통해
외형적 군더더기를 걸러내며 본질에 다가가고자 했던 작가의 삶.
그림을 위해 자신을 철저히 소모시켰던 화가의 삶과 정신에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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