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사진, 조형물, 영상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우리나라의 근대사를 풀어내고 있었습니다.
[1부 근대의 표상]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를 다루고 있는데요.
당시의 역사적 사건이나 소재를 다룬 근대, 현대 작가들의 작품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습니다.
을미사변을 다룬 박생광의 <명성황후>.
강렬한 붉은 색, 절규하는 궁녀와
평온하게 보이는 얼굴로 죽어있는 명성황후와 연꽃의 대비로
당시의 처참함과 울분, 그리고 명성황후의 극락왕생을 바라는 마음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작가 말년의 대작으로 한국 채색화의 극치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번 전시 한 쪽 코너에 일본 목판화 '우키요에'를 전시한 곳이 있었는데요.
국내에 처음 공개되는 것으로
조선을 침략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을 일본인의 시선에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임오군란도 청일전쟁도 자기들 입장에서 멋대로,
말하자면, 당시 일본 정부의 보도 및 홍보용으로 활용되었던 그림이지요.
17~19세기 일본 에도시대 목판화인 우키요에는
독특한 회화성 때문에 서양의 인상파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하는데
그럼 거짓과 정치성으로 포장된 저런 그림들이 그대로 서구로 흘러갔다는 말씀.
제 눈에는 그저 불편한 그림이었습니다.
한편 120분짜리 다큐멘터리 <조선의 낙조>가 한 쪽에서 상영되고 있었습니다.
멸망한 조선의 이씨 왕조의 후손들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가에 대한 인터뷰 형식의 다큐멘터리입니다.
의친왕의 딸 이혜원 여사님과 영친왕의 증손자 이석 씨의 증언이 바탕이 되고 있는데요.
일본에 볼모로 잡혀가 정신병을 얻어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던 덕혜옹주는 물론이고,
해방 이후 가난한 삶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던 왕의 후손들은
행방불명되거나 부랑자로 거리에서 죽거나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다고 합니다.
일제는 그렇다 치더라도 대한민국에서조차 대접은 커녕 사람 대우도 받지 못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후손들의 모습에 아이러니를 느낍니다.
또 인상깊었던 것은 최승희의 영상입니다.
최승희의 사진은 종종 봤지만
직접 춤을 추는 영상은 처음 봤는데요.
화질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만들어내는 선의 아름다움과
시대를 앞서간 모습은
21세기인 지금에도 감탄을 자아냅니다.
특히나 오디오로 흘러나오던 그녀의 노랫소리 또한
매력적입니다.
조선의 황토색을 가장 잘 표현해 낸 이인성의 <경주의 산곡에서>.
일제 치하에서 인정받은 작품이라 논란이 있지만 좋은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다고요.
[2부 낯선 희망]
지하 전시장으로 내려가면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근대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월북작가이지만 이제는 접할 수 있게 된 이쾌대의 작품 <해방고지>.
해방의 기쁨을 전하는 이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의 군중들의 모습이
덩어리감 있게 입체적으로 표현되어 생동감이 넘칩니다.
멀리서 보면 이승만의 초상화,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김구의 얼굴.
작가 본인이 성장하면서 입었던 유니폼들을 나란히 세워두니
우리 시대를 잘 말해주는 하나의 설치 미술작품이 되었네요.
우리의 삶 하나 하나가 역사임을 다시 한 번 느낍니다.
이밖에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는 물론,
작은 소품 하나씩이었지만 이중섭, 박수근, 장욱진 작가의 작품도 전시되어 있었고요.
그야말로 다양한 관점의 다양한 작품들을 둘러보며
우리 근대사를 다시 돌아보는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그 어떤 역사 교과서보다도
우리 시대를 잘 말해주고 있는 좋은 전시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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