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쟁이 끝나고 파리로 떠난 김환기 화백은
한국적인 소재를 꾸준히 차용하면서 활발한 작업을 계속해 나갔습니다.
2) 파리시대 (1956년~1959년)
파리시대의 작품들에서는
물감의 두께, 마티에르가 상당히 두꺼워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당시 파리에는 '엥포르멜' 이라는 새로운 미술운동이 있었다고 합니다.
김환기 화백은 당시의 사조를 받아들이면서도
그림에 들어가는 요소는 우리 전통 소재를 사용했다고 하네요.
<영원의 노래>-1957
두껍게 칠해진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핵심 소재들은 튀어나와 있고 그 옆을 지나가는 선은 움푹 파놓은 것처럼 들어가 있어서
입체적인 느낌을 줍니다.
더불어 그림 하나도 허투루 그리지 않는 화백의 꼼꼼함과 열심이 그대로 전해지는데요.
이 작품은 화백이 즐겨 그리던 항아리, 달, 매화에
십장생의 전통소재, 그리고 음악적 요소가 더해진,
구상작품에서는 가장 큰 100호짜리 그림입니다.
소재를 단순하게 배치하고 음악적 율동감과 리듬감을 표현했습니다.
'예술이라는 것은 강력한 민중의 노래가 아닌가 싶다'라고 말씀하셨다는 김환기 화백은
그림 뿐 아니라 음악과 글쓰기에도 재주가 뛰어나셨다고 해요.
그래서 그림에도 음악적 요소를 담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하셨다고 합니다.
이 작품만 '리움'에서 대여해 왔고 나머지 작품들은 모두 개인소장이라네요.
전시회를 위해 1년간 작품들을 모았다고 하는데
집에 걸어두고 보시는 분들이 정말 부러웠습니다.
물론 철통보안설비가 갖춰진 댁들이겠죠? ^^
3) 후기서울시대 (1959년~1963년)
경제난과 자녀 문제로 결국 파리생활을 접고 다시 서울로 돌아온 김환기 화백은
홍대학장, 미협회장 등을 맡으면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달과 매화와 새>-1959년
이 시기의 작품들에서는 더이상 항아리가 보이지 않게 되는 등
전통적인 것 보다는 자연을 주요 소재로 삼고
푸른 색의 색감은 더욱 짙어지며
작품 속 형태가 보다 간략해 지고 단순화 되는 걸 볼 수 있는데요.
이처럼 후기서울시대의 작품에서는
본격적인 추상으로 넘어가기 전 과도기적인 모습이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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