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는 도리의 길, 죽어서는 천국에 가는 길을 말이죠.
중앙 사원을 향해서 걸어가는데 현지인 보조 가이드가 뭐라고 소리칩니다.
저멀리 비오는 게 보인다고... 비구름이 우리를 따라오고 있으니 빨리 움직이자고...
점차 폭풍우가 치듯 바람이 거세지더니 우리가 사원 안으로 들어서자 솨아- 비가 쏟아집니다.
우기의 캄보디아, 스콜입니다.
실내에 있을 때 비가 많이 와서 큰 불편 없이 관광할 수 있었답니다.
미물계인 1층에 들어서자 직선으로 뻗은 벽에 부조가 빼곡하게 펼쳐집니다.
당시에는 이 벽화가 학교의 역할을 대신 했다고 하네요.
대부분이 전투와 관련된 벽화인데요, 수많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유명한 앙코르의 부조가 1층의 동서남북 사면의 벽면을 꽉꽉 메우고 있습니다.
1층을 돌아보고 2층으로 가면 인간계.
2층의 회랑에는 압살라 부조가 있다고 합니다.
앙코르 유적에 압살라가 없는 곳이 없지만 앙코르와트의 압살라가 단연 압권이라고 하는데...
저희 가이드 분이 별로 볼 것 없다고 그냥 3층으로 가시더군요. ㅜㅜ
못 보고 온 것이 얼마나 억울하던지...
저희는 바로 3층 천상계로 오르는 계단 앞으로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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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계로 오르는 계단이 몇 개 있었지만
다른 것은 다 출입금지이고
오직 인공적으로 철로된 손잡이와 계단이
덧대여진 이 곳만 출입이 허용되고 있었습니다.
경사 70도, 길이 30여 미터, 40여 개의 계단.
주의할 것은
무릎정도 길이의 바지를 입어야 하는 것.
계단 앞에서 복장검사를 합니다.
중앙사원의 천상계는
사람이 아닌 신을 위한 공간이었습니다.
왕과 승려들만 출입할 수 있었기에
미물이나 인간은 범접할 수 없는 곳이라는
의미로 계단도 가파른 것이고
짧은 하의로는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철계단과 손잡이는
옛날에 한 프랑스 관광객이 오르다가
떨어져 사망하는 사고 이후
프랑스에서 설치해 놓은 것이라고 하네요. |
발 하나 똑바로 디디기 어려운 좁은 폭, 이끼 때문에 미끄럽고 경사도 가팔라서
인공계단이 없었다면 음... 전 무서워서 못 올라갔을 거 같아요.
계단을 오르면 이런 모습의 사각형 사원이 있지요.
동서남북 네 군데 방에 불상이 모셔져 있고 지금도 향을 피우고 불공을 드립니다.
올라갔을 때는 미쳐 몰랐었는데 꼭대기 신전 내부 바닥에는 수직으로 된 함정이 있었다고 해요.
마지막 왕조가 피난을 가면서 함정 속에 보물을 모두 넣고 견고하게 메웠는데
500년 후 프랑스 건축가들이 그걸 또 어찌 알고 다 파서 가져갔다고 하는군요
천상계를 둘러보고 다시 내려오는 계단...
올라올 때보다 내려갈 때가 더 무서웠지만 아래만 안 내려다보면 괜찮습니다. ^^;
앙코르와트를 나오면서 1층에서 미쳐 보지 못하고 왔던 그 유명한 부조,
'우유의 바다 휘젓기'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가이드님 말씀에 수리 중이라 못 들어간다고 했는데
저기 보이는 저 외국인은 뭔가요...ㅜㅜ
실제 벽화 대신 인쇄된 그림만 보고 설명을 들었습니다.
악마들과 신들이 천년동안 벌인 줄다리기 신화를 50여 미터의 길이에 부조해 놓은 것이
우유의 바다 휘젓기 입니다.
투구 쓴 게 악마, 꼬깔 쓴 쪽이 선이고요.
선과 악이 뱀의 몸통을 잡고 우유빛깔의 바다에서 줄다리기를 합니다.
가운데는 거북으로 변신한 비슈누가 있고요.
결국 선이 이겨서 불로장생약 암리타를 얻게 되는데
악마 중의 한 놈이 암리타를 먹기 위해 선 쪽으로 위장해 들어갑니다.
암리타를 얻은 악마가 암리타 한 방울을 목구멍으로 넘기려는 순간
비슈누가 눈치를 채고 칼을 날려 악마의 목을 베었지요.
그러자 악마의 몸은 죽고 머리는 영생하였다는 이야기 입니다.
창조신화에 따르면 우유의 바다를 휘저을 때 선녀 압살라도 탄생했고
이 줄다리기 결과 우유빛 바다는 육지가 됐다고 합니다.
이 대작을 못 본 것이 이번 여행의 또 하나의 한으로 남았어요.
나 캄보디아 다시 가야 하는 건가... ㅜㅜ
비오는 숲길을 추적추적 걸어다가다 멀어져가는 앙코르와트를 돌아 봅니다.
우주를 이해하는 깊은 철학을 담아낼 줄 알았던 경이로운 크메르인들.
하지만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건축과정에서 고통받고 쓰러져갔을지...
아름다움이 깊을 수록 그 속에 담긴 눈물의 깊이 또한 깊다는 말이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