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길을 달려 다음 유적지로 향합니다. 캄보디아에 있는 내내 이 길을 수 십 번 오갔었는데요.
중앙을 관통하는 직선대로. 좌회전 우회전도 없이 주욱 달리면 태국이고 베트남이고 갈 수 있는,
이 길이 그 유명한 실크로드랍니다~
실크로드를 지나 앙코르 중심부에서 14km 떨어진 곳,
왕조 창업기의 왕도 '롤루오스(Roluos)' 지역으로 갑니다.
푸른 이끼와 풀이 자라며 허물어져 가는 남루한 모습. 롤레이 사원입니다.
붕괴를 막기 위해 이리저리 지지대를 둘러 놓았지만 그 역시도 위태해 보입니다.
롤루오스 지역은 왕조 창업기의 왕도로
앙코르 지역으로 왕궁을 옮기기 전 100여 년간 도읍이 있던 곳입니다.
롤루오스 지역에 자리한 롤레이 사원은 원래 인공 호수의 한 가운데 인공 섬에 세워져서
왕과 브라만 계급이 배를 타고 들어와 제사를 드렸다고 해요.
지금은 물이 말라 저희는 걸어서 롤레이 사원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세월의 풍상에 주저앉고 있는 옛 영화의 기억...
초기 유적지여서 그런지 유난히 더 훼손이 심해 보였습니다.
뒤짚어보나 바로 보나 구분이 안가는 듯한 글씨.
글씨에서나 조각에서나...
크메르인들은 꼬불꼬불 곡선에 대한 애정이 유난히도 깊은 것 같습니다.
사원 옆에 자리한 무덤 4개. 어느 귀하신 분의 무덤일까요.
롤레이 사원은 비록 세월의 풍상 속에 지워져 가고 있는 절이었지만
사원 뒤쪽으로 가면 현재진행형의 역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롤레이 사원 뒤쪽에 자리한 현대식 사원의 모습.
저런 깃발이 달려있으면 절이라는 표시라고 합니다.
황토빛 승복을 걸친 스님들이 오늘도 그 옛날의 어느 날처럼 불공을 드리고 있습니다.
과거와 현대의 사원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가운데 사원을 나오다 보면
갑자기 관광객을 향해 종종 걸음을 치는 아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초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밀짚모자를 파는 모습.
안쓰러운 마음에 우리 일행들 3달러 하는 밀짚모자 몇 개 사서 여행 내내 잘 쓰고 다녔습니다.
근데 이게 끝이 아니라는 사실.
롤레이사원을 시작으로 여행 내내 물건 파는 아이들과
몰카를 찍어서 금새 떡하니 사진 붙인 접시를 들이미는 아이들,
심지어 '원달러'를 외치며 마음을 아프게 하다가 나중에는 지치게 만드는 아이들을
숱하게 만났습니다.
다음으로 방문한 바콩 사원.
인드라바르만 1세가 건축한 것으로 안정감을 주는 피라미드 구도가 특징입니다.
롤레이 사원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신분차별이 있었는데
왕과 브라만 계급만 배를 타고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 롤레이 사원이라면
바콩 사원에서는 높은 계급 사람들만 가운데 보이는 꼭대기까지 와서 제사를 지낼 수 있었고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입구해서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요.
입구에서 보면 이렇게 작은 창이 나 있는데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이곳에서 보이는 탑의 꼭대기 모습에 만족하고
기도해야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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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탑이 뭐길래,
탑의 꼭대기에는 뭐가 있길래 그랬을까요.
미처 사진을 찍지 못했지만
꼭대기 탑까지 올라가서
문으로 들어가 벽을 잡고
탑 안쪽 천장을 올려다보면
깜깜한 꼭대기 끝에
작은 삼각형 모양의 구멍이 뚫려있습니다!
그 구멍으로 빛이 들어오고 있었는데
천국을 상징한다고 해요.
아래 바닥에 향을 피워두고
꼭대기 구멍을 보고 기도했었나 봅니다.
신분이 높으면 천국 가까이 와서
기도할 수 있고
신분이 낮으면
그저 먼 발치에서
작은 창에 보이는 천국을 보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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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내려가며 착잡한 마음이 들 찰나,
낮은 계급의 사람들이 기도 드리던 그 입구에 서있던
두 남자아이의 합창소리에 웃음이 빵 터졌습니다.
"젊은 언니 참 예뻐요~ 안녕히 가세요"
바콩 사원 조금 옆에 위치한 왕실전용 납골당에도 갔었는데
납골당 입구에 닳고 닳은 소 두마리가 눈에 띄더라구요.
'쉬바'신이 타고 다니는 흰소인 '난디'라고 합니다.
가이드 분이 이 소의 입을 만지면 질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 저희더러도 만져보라고 하시더군요.
다들 그 소리가 떨어지기 무섭게 소의 입을 열심히 어루만지는데...
아무리 그래도 유적인데 저렇게들 와서 만지고 가면 금새 마모될 게 아닌가 싶으면서도
건강에 대한 갈망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구나 싶었습니다.
오늘의 유적지 탐방을 마치고 버스에 오르려는 찰나
한 무리의 아이들이 일행을 막아섭니다.
그리고는 들이대는 바로 그 접시!
조금 전 바콩사원에 들어갈 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도둑촬영을 해서는
금새 접시에 붙여 2달러에 파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사진 속 얼굴과 그 주인공을 빠르게 비교해 찾아내서는
그 앞에 가서 귀찮을 정도로 매달려 2달러를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제 눈에는 같은 아시아 인이라도 캄보디아 사람들이 다 비슷비슷해 보이던데
하루 이틀 장사해 본 솜씨가 아닌 것 같아 씁쓸했죠.
저걸 구입하자니 돈이 아깝고
그렇다고 안 사면 내 얼굴 떡하니 붙은 저 접시가 어디서 뒹굴지 모르고...
알고보니 주인이 사지 않으면 새로운 주인공 사진을 붙여 판다는군요.
아무튼 어린 나이에 장사치에 물들어버린 아이들이 안타까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