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코르셋으로부터 해방시킨 샤넬.
질질 끌리는 드레스 밑단을 과감하게 잘라낸 샤넬.
모자의 깃털장식을 떼어내고 여자 옷에 처음으로 주머니를 단 샤넬.
검정색의 세련됨을 일깨워 준 샤넬.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트위드 재킷으로 대표되는 샤넬...
이름만으로도 역사가 되는 샤넬이기에
그녀의 삶을 영화화 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었던 것 같다.
베일에 싸여 있고 복잡하고 화려한 그녀의 삶이었기 때문일까.
영화 <코코샤넬>은 샤넬이 디자이너로서 성공하기 이전까지의 이야기만을 그렸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 조차 '나는 패션보다 샤넬의 독특한 캐릭터에 흥미가 있었다'고 했다.
원제가 Coco Avant Chanel이라고 '샤넬이 되기전 코코' 였다고 하니...
<코코샤넬>을 통해 화려한 눈요기를 기대했던 나는
겨우 마지막에 등장하는 짧은 패션쇼 장면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샤넬은 부모에게서 버림 받고 고아원에서 자랐고 한 때 캬바레에서 노래를 부르는 여인이었다.
'코코'라는 이름은 그녀가 그 당시 부르던 노래 '누가 코코를 보았니'에서 따온 별명이다.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 가난한 처녀들이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부자와 결혼하거나 가수나 여배우로 성공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가수나 배우로 성공하고 싶었던 샤넬은 귀족 발장의 도움으로 성공하기 위해
그의 집으로 무작정 찾아가 기식하며 집요하게 버틴다.
그러던 그녀에게 관심을 가져준 이, 보이카펠.
그녀는 그와 사랑에 빠지며 그 사랑 안에서 자신의 야먕을 성취해 간다.
비천하기 이를 데 없는 인생이었지만
절망하여 포기하거나 혹은 줏대없이 막연하게 상류문화를 동경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시니컬한 시선으로, 때로는 타는 듯한 야망으로 인생의 기회들을 하나씩 거머쥐었던 것 같다.

영화의 중심은 연인 보이 카펠과 샤넬의 로맨스이다.
샤넬이 모자가게를 열 수 있도록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보이 카펠.
누구보다 그녀의 재능과 감각을 아끼고 응원했던 그는 안타깝게도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다.
(실제로는 샤넬에게 청혼하러 오는 길에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고 한다.)

정부는 두되 남편은 두지 않았던 샤넬.
누군가의 아내로 사는 행복보다 성공한 한 여자로서 사는 행복을 선택한 사넬이었기에
그녀의 외로움이 그녀를 일중독자로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내로서의 행복과 커리어 우먼으로서의 성공.
두 가지 행복을 다 거머쥐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아멜리에>로 귀엽고 깜찍하게 기억되는 '오드리 토투'가 샤넬을 연기했는데
실제 샤넬보다는 덜 날카롭고 보다 중성적인 이미지였지만
선 굵은 눈썹과 고집스러운 검은 눈동자가 마치 샤넬의 것인양 묘하게 어울렸다.
실제 샤넬의 삶보다 좀 포장된 부분도 있고
샤넬의 욕망이 사랑이야기에 가려져 좀 아쉽기도 했지만
다큐멘터리가 아닌 영화가 갖는 장르의 허구성을 이해한다면
역경을 딛고 자신만의 신념으로 스타일을 창조해 낸 디자이너의 이야기로 즐길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