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미학의 거장,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에 다녀왔습니다.
세종문화회관 1층 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는데요.
다행히 전시 정보를 미리 접한 덕분에 인터넷 사전예매를 통해 4000원 할인 받은 8000원에 관람을 하고 왔지요. ^^
브레송은 보통 '찰나의 미학', '결정적 순간' 등의 수식어로 표현되지만
총 5가지의 섹션으로 전시된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가 그 동안 브레송을 너무 편협한 시각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전시장에 흐르던 잔잔한 기타선율,
이례적으로 사진 옆에 붙어 있는 작품설명, 그리고 평일 오후 5시에 진행되는 도슨트 설명을 통해
저는 좀더 깊은 시각와 열린 감성으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과 그의 사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 큐레이터가 전한 이번 전시 관람 팁 2가지!
1) 먼저 각 섹션 방을 전체적으로 보고 사진 하나하나를 보는 순서로 관람할 것.
2) 사진을 먼저 보고 설명을 참조할 것.
작품의 크기나 배열간격에도 다 의미가 있고 섹션별로 가장 중앙에 있는 작품이 제일 중요한 작품,
그리고 섹션의 첫 작품이 그 다음 중요한 작품으로 전시되어 있다고 하니까요,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section 1: 결정적 순간>
브레송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들이 모여 있는데요.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며 세상의 숨겨진 질서를 발견하고자 했던 브레송.
그가 포착했던 찰나의 순간들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생 라자르역 뒤에서, 1932>
결정적 순간으로 대표되는 브레송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죠.
물 웅덩이 위의 남자와 뒷 벽면 무용수의 움직임의 유사성, 인물과 물에 반사된 그림자의 대칭구조를 통해
역동적이고 리듬감 있는 사진구성을 보여줍니다.
장면을 연출한 것이 아니라 남자가 뛰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대상이 가장 완벽한 구성을 보이는 순간을 포착했다는 점에서 브레송의 예리하고 탁월한 감각이 빛납니다.
수직의 선들과 아치형의 길 모양,
자연스럽게 시선의 흐름이 멈추는 빈공간에 지나가는 자전거가 이루어 내는 구성미가 돋보입니다.
빈 공간에 자전거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포착한 사진이라고 하네요.
벽면의 창문이 만들어내는 추상적인 느낌에
아래 인물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얼굴각도와 표정.
어쩜 이런 순간을 포착할 수 있는지... 부지런히 그리고 열정적으로 셔터를 누른 성실함의 결과가 아닐까요.
"피사체를 고려하여 카메라의 위치를 정하고 거기에서부터 구성영역을 잡아나간다"
<section 2: 내면적 공감>
내면의 잠재적 감정이 대상과 우연한 만남으로 드러나는 때를 보여주는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카슈미르 분쟁이 있었던 당시 인도에서 촬영한 작품입니다.
멀리 있는 히말라야 산맥을 향해 손을 올려 기도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에서 경건함과 성스러움이 느껴집니다.
91세 때 촬영한 브레송 말년의 그림자 자화상입니다.
긴 그림자가 드리우는 해질녘에 자기 그림자를 넣어서 촬영한 브레송.
노년의 어느 시점에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상징적인 작품입니다.
<section 3: 거장의 얼굴>
작가가 당시 교류했던 인물들을 촬영했던 사진이 전시 되어 있는데요.
당대 인물사진가들은 배경을 다 없애고 인물만 찍는 경우가 많았는데
브레송은 그 인물이 생활하는 공간, 작업실, 같이 살고 있는 사람, 기르는 동물 등을 함께 배경으로 넣어서
그 인물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합니다.
단, 여기서도 절대로 연출은 금기사항! 표정도 웃는 가식적인 모습이 아니라 무표정한 평소의 모습으로~
이 섹션에서 다른 인물들은 1장 씩 전시되어 있는데
브레송이 존경했던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 사진은 무려 5장의 작품이 들어가 있었어요.
조각가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 그를 굉장히 좋아하고 존경했다고 하네요.
자코메티의 조각은 몸이 길고 살이 없고 상체가 앞으로 구부러진 채 걷고 있는 조각작업을 많이 했는데요,
오른쪽 사진을 보면 초점이 나간 길고 마른 나무와 상체를 구부리고 걷는 자코메트의 모습이
그의 작품을 암시하면서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초점이 나간 물체가 앞쪽에 화면 중앙을 지나가고 있기에 잘못 찍은 사진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 의도를 알고 나니 사진에 접근하는 그의 시각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section 4: 시대의 진실>
20세기 중요한 증거로서 찍었던 브레송의 사진들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특히나 인도네시아 출신의 여성과 첫 결혼을 하면서 아시아 사진도 많이 찍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공산주의가 막 들어서던 중국과 소련의 모습 등 귀한 사진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제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조지6세 대관식 장면을 찍은 아래 사진.
당시 사진기자라면 누구나 찍었을 화려하고 가식적인 대관식의 장면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주변부 시각을 기록하고자 했던 브레송의 관점이 돋보입니다.
<section 5. 휴머니즘>
소박함과 소박한 사람들을 사랑했던 브레송.
집안이 굉장히 부유해서 그런 사람들과만 어울릴 법도 했지만
항상 2등석을 타고 싸구려 호텔에 묵으며 저렴한 음식을 먹으면서 만난 서민들의 모습을 많이 담았다고 합니다.
세계 최초로 유급휴가를 노동법에 포함시킨 나라, 프랑스.
햇빛 잘 비치는 해안가에서 일광욕을 하며 가족과 휴일을 보내는 서민들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멕시코 사창가의 모습을 찍은 사진.
어떻게 이런 곳에서 대상이 자연스레 얼굴을 카메라 앞에 맡길 수 있게 했을까요.
인간에의 뜨거운 관심이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골목을 누비며 그들의 삶의 단편을 기록한 그는 계층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그들의 진실된 모습을 담아내고자 노력했던 마음 따뜻한 작가였습니다.
전시장 한 쪽 벽면에 3분짜리 영상이 상영되고 있는데요.
브레송이 실제 사진 찍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옛날 필름입니다.
발이 보이지 않을 것처럼, 기민하고 재빠르고 날렵하게, 누구의 표현대로 한 마리의 잠자리처럼
연신 셔터를 누르며 작업에 열중하는 브레송을 볼 수 있지요.
아, 저런 열심과 고도의 집중력으로 찍어야 제대로 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거구나...
감탄과 반성이 뒤섞인 감동을 짧은 영상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브레송의 사진을 보며 느꼈던 감흥을 어떻게 이 곳에 다 옮겨 적을 수 있을까요.
그 동안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던 앙리 까르티에 브레송의 삶과 그의 사진에 대해
깊은 이해와 공감을 하고 싶으신 분들!
9월 2일까지 전시되는 이번 사진전에서 꼭 그 감동을 느껴보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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