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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색 블루 (Trois Couleurs Bleu, 1993)

영화한편

by primeworks 2012. 3. 5.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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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막을 내린 칸영화제에서 줄리엣 비노쉬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녀의 연기가 새삼 궁금해졌다.

마침 구입해 두고 보지 못했던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세 가지 색 연작 영화 중
가장 오묘한 느낌을 발하는 첫 번째 작품, 블루를 꺼내 들었다.


음악가인 남편, 딸과 함께 차를 타고 가던 줄리(줄리엣 비노쉬)는
갑작스러운 자동차 사고로 남편과 딸을 잃는다.
상실감에 빠진 줄리는 분노와 절망의 고통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줄리.
그 순간부터 자신을 붙잡고 있던 죄의식과 절망에서 점차 벗어나게 되고
미완성으로 그친 남편의 작품을 완성시켜가게 된다.

영화의 전반적인 느낌은 우울하고 아프고 답답했다.
너무나 슬프고 고통스러운 상황인데도 영화는 한 번도 그 아픔을 속시원하게 토해내지 못한다.
그것이 바로 혼자 살아남은 자로서 겪어야 하는 주인공 줄리의 고통이었다.

사랑하는 남편과 딸의 기억에서 벗어나고자 애쓰는 그녀의 몸부림은 애처롭다.

따로 보관되어 있던 남편의 악보를 찾아와 청소차에 버리고
타오르는 벽난로 불길 속으로 추억의 물건들을 던져버린다.
소지품을 정리하다 발견한 딸의 막대사탕은 고통에 떨며 오독오독 씹어 삼킬 수밖에 없다.
가족의 공간이던 파란 방에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를 불러들이지만
다음날 자신에 대한 증오감은 더욱 커진다.

죄책감, 분노, 냉소 그리고 연민...
영화 속에서 줄리 그 자체로 절제된 슬픔을 연기하는 줄리엣 비노쉬의 연기는 인상적이었다.
불현듯 엄습하는 기억들로 다시 또다시 괴로움에 빠져드는 줄리를
그녀는 격렬하지 않은 표정과 눈빛으로 너무나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영화 전체를 감싸고 있는 푸른 빛의 미장센과 극도의 클로즈업으로 처리된 화면 등
영상에 시적인 감성을 더한 장면들도 기억에 남는다.



특히 그녀가 아픔을 씻어내기 위해 자주 갔던 파란 수영장과
분노로 끊어버렸지만 결국 새로 옮긴 거처에 다시 꺼내어 걸어둘 수밖에 없는 파란 샹들리에는
눈이 시리도록 푸르게 화면을 압도한다.



남편의 외도사실을 알게 된 후 전혀 화내지 않고 오히려 너그러웠던 것은
혼자 살아남은 죄책감으로 늘 미안했었는데
남편도 사실 자신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이제 서로 미안해 할 것 없다는 마음의 후련함 때문은 아니었는지.

그 해방감으로 비로소 남편의 작품도 객관적으로 대할 수 있게 되고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의 사랑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

비록 행복해 보이는 자유는 아니지만
힘겨웠던 삶을 이겨낼 그녀만의 비상구를 찾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화가 말하는 자유에 대한 생각은 쉽게 정리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주인공이 슬픔을 겪어 나가는 과정을
훌륭한 연기와 감각적인 연출로 풀어나가고 있는 그 자체 만으로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또 보게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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