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죄책감에 시달리시는군요.
주변의 일들에 너무 책임을 지시려는 것 같네요.
하지만 인생이란게 내 맘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정신상담의사로서 환자에게 했던 이 조언이
결국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게 될 줄 알았을까.
강박증 환자, 성도착증 환자, 건강염려증 환자...
주인공 조반니는 늘 이런 환자들의 이야기를 참을성 있게 들어주며
그들의 정신적 회복을 돕는 정신상담의사다.
말 그대로 멀쩡한 사람도 미치게 할 것 같은 환자들의 이야기에 파뭍혀 지내는 그이지만
병원과 붙어 있는 집으로 문 하나만 열고 들어서면
삶의 이유와 위로가 되는 가족이 있기에 별 문제 없이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에게 갑자기 찾아온 아들의 죽음.
그의 가정은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갑자기 균형을 잃고 휘청거린다.

감독: 난니 모레티, 각본: 난니 모레티, 출연: 난니 모레티...
제작과 시나리오, 배우, 극장경영, 배급까지 1인 제작 시스템을 운영한다는 그는
이 영화로 2001년 깐느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까지 거머쥐었다.
혀를 내두를만한 그의 천재성에 새삼 관심이 간 영화였지만
<아들의 방>은 현란한 액션이나 테크닉 없이도 깔끔하고 차분하게 감동을 선사하는 영화였다.
문화의 차이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을 대한 가족들의 반응은
마치 오랜 투병생활 끝에 아들을 보낸 사람들의 모습처럼 조금은 의아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 보여지는 아버지와 아내, 딸 각자가 겪는 상실의 후유증은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기에 충분했다.
나중에 알게 된 아들의 여자친구와, 함께 무전여행 중인 그녀의 새로운 남자친구를
프랑스 국경까지 데려다 주며 그 자리에서야 가족은 웃음을 회복하게 되는데
그것이 상실감과 슬픔, 죄책감으로 얼룩졌던 마음의 공간(the son's room)이
비로소 아픔을 비워내고 아들을 잘 떠나보내며 회복되는 과정은 아니었는지.
섬세한 심리묘사와 잔잔히 마음을 두드리는 감동도 마음에 들었고
세심하게 배려한 빨강, 파랑, 노랑의 미장센도 잘 어울어진 좋은 영화였다.